[북클럽 비하인드]《수치심 탐구 생활》


《수치심 탐구 생활》
사월날씨 지음 (왼쪽주머니)

북클럽 진행일 : 6월 11일 일요일 오후 7시 30분
진행 : 사월날씨



 지난 6월 11일, 《수치심 탐구 생활》의 저자 사월날씨 님과 함께 《수치심 탐구 생활》 북클럽을 진행하였습니다.

   표지부터 강렬한 이 책은 저자가 경험한 수치심의 장면들을 기록한 책으로 수치심이라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물론, 수치심이 비롯된 원인을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고찰하는 에세이입니다. 또, 수치심을 '극복' 또는 '회복'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방식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수치심과 함께 살아갈 앞으로의 삶에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심리서 혹은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결론을 내리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미지 : 북클럽에 활용된 PPT 자료 중 일부)


   북클럽에 참여한 불씨들에게 북클럽 참여 이유를 듣는 것으로 북클럽이 시작됐습니다. 다양한 답변이 나왔는데요. 수치심이라는 키워드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참여를 결정한 분도 계셨지만, 책 표지에 삽입된 내용에 크게 공감하여 신청하셨다고 이야기해주신 분도 계셨어요. 


나는 내가 다르고 부적절하고 부족하다고 느낀다.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참석한 사람 같다. 다른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편안하게 분위기를 즐기는 듯 보인다. 침묵이 찾아오는 틈을 노려 용기를 쥐어 짜서 입을 떼본다. 하지만 이미 대화의 흐름은 바뀌어 있어 내 말은 뒷북이거나 자투리가 될 뿐이다. 겨우 말을 마친 나는 내 말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불안한 눈동자로 대꾸해주는 이가 있는지를 주의 깊게 살핀다. 이 모습을 내내 지켜본 누군가가 퉁명스럽게 의문을 제기할 것만 같다. 쟤는 왜 저기에 저러고 있는 거지?
- 도서 표지에 삽입된 내용


   책에서 저자가 언급한 대로, 우리의 수치심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표지에 적힌 단 몇 줄만으로 자신의 수치심을 떠올린 분들이 북클럽에 참여하신 걸 보면 알 수 있죠. 우리의 수치심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슬프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수치심의 일부가 사회구조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했거나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면 모두가 비슷하게 느낀다는 사실은 아프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특히 여성이 경험하는 억압은 이러한 수치심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4장 「여자라는 몸」에서 여성이 경험하는 이중의 수치심 억압에 대해 지적합니다. 사회가 "외모, 성취, 관계, 자아, 성격 섹슈얼리티 등"(p.202)의 영역에서 수치심을 학습하도록 만들고, 여성이 이미 가진 것의 가치를 깎아내리며 작은 실패에도 가혹하게 굴게 만든다고 이야기하죠. 그러면서 저자는 다른 모든 정보가 삭제된 채 '몸'이라는 맥락만으로 여성이 설명되는 여성혐오적인 문화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수치심은 결코 우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타인의 수치심이 나의 수치심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며, 우리의 수치심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정적 증거일 것이다. 오로지 나만 겪는 문제라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한 발자국 물러나 바라보며 공통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위안받고 한없이 아득해진다. (p.215)

여자들은 자신이 가진 것, 자기와 관련된 것들을 겸손보다 조금 더 나아간 태도로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여자의 실패에 더 가혹하게 구는 문화가 만들어내는 태도다. 정상과 가치의 기준이 여자에게 훨씬 더 촘촘하게 짜여 있는 상황이 이에 기여한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높은 기준이 들이대어지고 이중 잣대가 들이밀어진다. (p.202)


   '수치심이란 무엇인지' 각자의 방식대로 정의하여 이야기하던 순간도 인상적이었어요. 수치심은 관계적인 감정이라는 정의에 이어지는 경험을 듣는 시간도 좋았고요. 또, 스스로가 일관되지 않다고 느껴질 때 또는 모순된다고 느껴질 때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기제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는 한 참여자의 이야기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다른 분들처럼 이 책의 모든 부분에 밑줄을 열심히 그어가며 읽었는데요. 그 중 제가 특히 공감했던 파트는 5장 「완벽과 충분 사이」의 「오후 세 시의 수치심에 관하여」 였습니다. 이 챕터에서 저자는 프리랜서인 자신이 오후 세 시에 돌아다니며 느낀 수치심에 대해 서술했어요. 저도 작년 말 퇴사 이후에 한동안은 '낮에 도시를 활보하다니! 짜릿해!'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몇 주 지나지 않아 제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도시의 유령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었거든요. 모두가 일할 시간에 쓸모를 찾지 못한 노동자, 쓸모가 없어진 노동자가 된 것 같아 여전히 불안한 저로서는 이 챕터가 특히 공감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남들이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간인 오전 아홉 시에서 오후 여섯 시 사이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신경 쓰인다. (...) 그저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는 것이다. 스스로 밥벌이를 하지 못하고 어딘가에 기대어 지내는 존재처럼, 잉여의 존재처럼 여겨지지는 않을까? 오후 세 시의 집 밖의 나는 어딘지 당당하지 못하다. (p.237)


   《수치심 탐구 생활》의 마지막 챕터에 실린 「수치심에 비추는 햇빛」에서 저자는 분노와 슬픔 등 자신이 느끼는 모든 감정을 수치심과 연결시키는 자신의 습관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문제의 모든 측면을 '수치심'이라는 말로 납작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촘촘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두려워 수치심이라는 감정으로 모든 문제를 수렴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죠. 저자는 곧 수치심에 몰입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발견한 데에서 오는 희열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수치심 자체가 아님을, 수치심만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 흐름과 성향들을 설명해주는 건 맞지만 그것이 곧 나는 아님을, 온 세포가 수치심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님을, 수치심과 함께 다른 종류의 나쁜 것들이나 수치심을 뚫고 살아남은 좋은 것들도 나에게는 있다는 점을 상기해보고 있다. (p.257)


   분노와 스트레스, 우울감이 공기를 가득 메우고 있는 이 시기에 내게 남은 좋은 것들을 상기해보는 건 중요한 작업입니다. 물론 쉽지 않을 거예요. 저도 평소에 잘 해내지 못하는 일이고요. 그래도 모두가 계속해서 좋은 것들을 떠올려보려고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 내일을 기대하는 힘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종종 참여자 분들이 비슷한 키워드의 다른 책을 소개해주시는데요. 이번 모임에서도 어김없이 수치심과 관련된 두 권의 책을 공유해주셨어요. 오늘 후기는 참여자가 《수치심 탐구 생활》 북클럽에서 공유해주신 도서 두 권을 소개하며 마무리해보겠습니다.


1. 관계중독
달린 랜서 지음, 박은숙 옮김 (교양인)


"관계 중독자의 내면에는 자기가 사랑스럽지 않고 부끄러워서 사라져버리고 싶은 나쁜 감정, 즉 수치심이 있다. 수치심은 ‘사랑의 파괴자’다. 건강한 관계에 요구되는 모든 행동과 소통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수치심과 관계 중독은 서로를 자양분으로 삼아 우리의 삶을 망친다. 저자는 심각한 관계 중독자였던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또 심리 상담을 하면서 만난 내담자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삼아 수치심과 관계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안내한다." (출판사 소개글 중)



2. 셰임 머신
캐시 오닐 지음, 김선영 옮김 (흐름출판)

"20여 년간 월스트리트와 IT업계에서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빅데이터를 연구한 수학자 캐시 오닐은 『대량살상수학무기』를 통해 공정하고 객관적이라고 알려진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사실은 편향적이며 취약계층에 불이익을 준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녀는 이제 한발 더 나아가 『셰임 머신』에서 플랫폼과 알고리즘을 통해 외모, 가난, 젠더, 피부색, 정치적 입장 등 다방면에 걸쳐 왜곡된 수치심이 구조화되고 이를 정치적,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시스템, 수치심 머신을 고발한다. 그리고 수치심 머신을 역이용해 혐오와 불신으로 분열된 사회를 치유할 해법을 제시한다." (출판사 소개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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