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및 역자 인터뷰]『식물, 상점』 저자 강민영 작가 인터뷰


『식물, 상점』 저자 강민영 작가 인터뷰


《식물, 상점》 읽기


목차

1. 2023년 한국의 페미니즘, 그리고 <식물, 상점>의 시작점

2. '식물' 상점인 이유

3. 에피소드별 대담

4. 사적 처벌에 관해

5. 작품의 메시지에 관해

6. 작가의 안팎: 나를 이해하는 사람 딱 하나만




2023년 한국의 페미니즘

그리고 <식물, 상점>의 시작점

 

들불: 2017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4~5년 간 여성인권과 페미니즘은 사회 전반에 강력한 아젠다로 떠올랐죠. 하지만 2023년 현재, 부산 돌려차기 강간 살인미수 사건이나 엘리베이터 폭행 사건 등 여전히 비슷하거나 더 폭력화된 사건들은 늘어난 것 같아요.

 

강민영 작가(이하 ‘강’): 여전히 아득한 어둠이 짙게 깔려 있는 밑바닥을 더듬는 느낌이에요. 요즈음 벌어지는 강력 범죄 사건들을 보거나 혹은 길거리에서 누군가 수다처럼 던지는 여러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오히려 더 여성인권은 더 퇴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페미니즘은 어쨌든 인권을 이야기하며 인간 대 인간 사이의 보편적 평등을 위한 운동이기도 한데, 이것을 언젠가부터 진영 싸움으로 몰고 가는 듯한 분위기가 팽배해지기도 했구요.

 

들불: 네, 저도 그렇게 느끼곤 합니다. 여성인권과 페미니즘은 여타 담론들에 밀려 다소 주춤한 분위기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러한 흐름이 <식물, 상점> 집필의 계기가 되었을까요?

 

: <식물, 상점>의 시작은 이 흐름과 연관은 있지만 유일한 집필계기는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항상 의문이었어요. 왜 한국 소설에서 죽는 건 여자일까? 왜 가장 많은 피해를 입고 그 피해의 트라우마를 두르며 살아가는 사람은 여자일까소설뿐만 아니라 최근의 한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여성이 복수하지 못하고 도망치거나 죽어나가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배경인 소설을 좀 뒤집어보고 싶었어요.


 ‘식물’ 상점인 이유

식물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편견

 

들불: <식물, 상점>의 주인공은 여성 킬러라는 점이 눈에 띄지만, 이것 외에도 식물 상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라는 점에서도 재미있는데요, ‘식물’을 파는 ‘여성 킬러’라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작품을 읽는 동안 저는 ‘식물’과 ‘여성’이 주로 ‘수동적인 존재’로서 자리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 말씀하신 것이 정확히 맞아요! 소위 ‘식집사’들은 여성 비율이 많을 거라는 단순한 생각, 그리고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착하고 선하며 상냥하며 두루두루 둥글게 지낸다 같은 편견과 여성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등의 사회적 잣대와 틀을 조금 겹쳐 두고 싶었어요.

 

들불: 그 의도가 정확히 작품을 통해 드러난 것 같아요(웃음). 또, 식물이 단죄의 방법 중 하나로 활용된다는 점도 인상 깊어요. (예컨대 3편에서 집단 중독 사건을 일으킨 케르베라 오돌람의 경우) ‘식물’을 떠올릴 때 많은 사람들이 ‘편안한’, ‘정적인’, ‘평화로운’ 과 같은 분위기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인간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하는 것 같아요. 이러한 식물의 양면성이 인간(사회)의 단면을 나타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 사람은 완전한 흑과 백으로 구분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디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성격도 생각도 가치관도 모두 바뀌지 않나 싶어요.

 

들불: 맞아요. 작품 속에서도 누군가는 좋아보였다가 나쁜 모습이 되고, 누군가는 약해보였다가 내면의 힘을 가진 인물로 성장하고는 하죠. 그럼 작가님에 생각하시기에 식물과 인간의 양면성은 어떤 점에서 다를까요?

 

: 소설 속의 주인공 유희는(그 자신도 마찬가지지만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해 이리저리 휘둘리고 고통 받는 여성들을 좋은 뿌리를 내리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요. ‘여성이라는 단어로 포장되거나 강요되는 많은 상징들을 식물을 통해 바꿔보고 싶기도 했어요. 궁극적으로는 ‘식물’이라는 온화한 이름 아래 가려진 날카로운 칼날, 혹은 숨겨진 발톱 같은 것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달까요. 시종일관 평화롭고 둥글둥글한 모습으로 살다가 진짜로 필요하고 ‘빡치는’ 순간에는 서슴없이 칼을 잡아 꺼내는 캐릭터 ‘무민’처럼 말이죠.

 

 


에피소드별 대담

 

1

쉬운 여자, 라는 말

 

들불 : 1편에서 유희에게 사업적으로 접근해 이용하려는 지훈이 통화 중 ‘다루기 쉬운 여자라니까.’ 라고 말해요. ‘쉬워 보인다’ 라는 표현은 여성이 일상적 혐오를 경험하면서 정말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맞아요. 저도 정확히 유희가 들은 말을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비슷한 경험은 몇 차례 있었어요.

 

들불 : 쉬워 보인다는 말뿐 아니라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자들이 여성을 공격하기 위해 하는) 말들이 제게 익숙하게 들려서 계속 좀 울컥하게 되더라고요. 작가님께서 직, 간접적으로 자주 경험하신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 사실은 너무 많아서 뭐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소위 MBTI로 말하자면 E 성향이 정말 강한 사람이라 성별에 상관없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데요. 그냥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친절하고 싶고 먼저 다가가고 싶은 성격일 뿐인데, 몇 남자들이 ‘헤프다’고 뒷담화하기도 했어요. 뒷담화라면 걸리지 말기나 할 것을 그 소문이 돌고 돌아 내 앞에 당도한 적이 제법 많았고요. 또 성적인 부분과 연관되어 그들이 농담처럼 입에 올리는 말이니 어떻게 보면 참 익숙한 셈이에요.

 

 

2

사랑하니까 그랬다

 

들불 : ‘가스라이팅은 몇 년 사이 여성과 남성의 관계 내 권력의 역학을 설명할 수 있는 유용한 개념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어요. 그런데도 폭력적인 관계를 경험하는 여성에게 책임을 묻는 행태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의아하기도 한데요. 예컨대 사람은 끼리끼리 만난다고 한다든지, ‘사람 보는 눈이 없다’, ‘그러게 진작에 헤어지지 그랬냐는 등으로요. 

 

 : 맞아요. 최근에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여러 매체에서 화제가 되면서 일상에서의 사용도 빈번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이 단어가 밈이나 농담처럼 쓰이면서 본래 의미를 잃거나 정작 필요한 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의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에 대한 사용은, 그냥 다른 사람의 말을 차단하기 위해서 혹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해 반박하기 위해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 같아요. 애초에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의 발화는 정신적 학대에서 기반했단 걸 널리 인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들불 : 저 역시도 가스라이팅이 ‘O스라이팅처럼 말장난이 되어버린 것에 유감을 느꼈는데, 작가님께서 그 부분을 짚어주셔서 그 심각성을 더욱 강하게 인지하게 됩니다.

    작품에서는 가스라이팅의 모습이 가해자가 끊임없이 연락해 상대를 확인하거나 화났을 때 모욕적인 말을 내뱉고 그 후 태연하게 용서를 구한다는 점에서 가스라이팅의 전형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 때, 유희가 피해자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장면이 가해자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인상 깊었고요. 가스라이팅을 작품에 녹여낸 방식에 대한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 남성들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해본 일이 제법 있어요. 한국 여자들은 대부분 한 번쯤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보니 아, 그게 가스라이팅이었네’ 하는 순간들이 참 많았어요. 그 당시에 아, 이게 이거구나하는 가이드가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그렇게 괴롭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가이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 억압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여성들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꺼내서 제자리에 놓아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유희라는 주인공을 만들게 되었어요.

 

 

3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식물

 

들불 : 가정폭력을 당하는 (미성년자인) 민하에게 유희가 돌덩이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숨기지만 작은 상처에도 민감한 다육식물인 리톱스를 선물하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마치 민하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했고요. 또, 가정폭력은 특히 피해자가 신고하거나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타인이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3화의 리톱스’ 이외에도 작품에는 여러 식물들이 등장을 해요. 사건이나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상징하는 역할도 하고, 에피소드 별 인물들과 주인공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특히 생소한 이름의 식물을 접할 때마다 이 식물과 작가님은 어떤 연관이 있는걸까 그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 각 에피소드의 식물들에 대한 아주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는데, 딱 하나 다른 것들보다 좀 더 마음이 가는 게 있다면 ‘케르베라 오돌람’일 것 같아요. 3화 소설을 고치던 중에 잠시 인도에 다녀왔는데, 남인도 맹그로브 밀집 지역을 다니던 중에 이 식물을 실제로 보았어요. 머릿속에 저장만 해둔 식물을 직접 보니 좀 신기했고, 마침 소설 속에 그 구간을 막 지나친 터라 그 앞에 오래 서 있었더니 생츄어리 투어 가이드가 신기해하더라고요. “그건 함부로 막 따고 만지고 먹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라고 이유를 알려주려 하기에 씨익 웃으며 “여기서 이 식물에 대해서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라고 말했어요. 한국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식물을 갑자기 마주하게 된 거라, 약간 신기루 같은 느낌도 들었네요.

 

 

4

약한 존재를 향한 범죄

 

들불 : 제가 아무래도 고양이 두 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보니 4편에서 다룬 길고양이 학대 사건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4편에서 길고양이 학대범 캣피가 누구인지 제보한 인물(수지)이 제보 이후 캣피에게 계속해서 쫓긴다며 공포에 질려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동물을 향한 폭력과 여성을 향한 폭력(보복성 스토킹범죄)은 연결된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그중에서도 동물 학대 신고와 여성의 스토킹 신고를 대하는 경찰의 태도를 비슷하게 그린 대목에서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처벌 수위가 약한 것은 물론이고, 처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제보자의 말을 믿어주지 않거나 (동물) 학대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동물에 관해서는 언제나 할 말이 많아요. 애초에 이 연재소설을 기획할 때도 무조건 동물 학대에 관한 것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 중 가장 쉽게 일어나는 것이 동물 학대이고, 이는 곧 동일 종족(사람) 중에 약자인 여성 대상 범죄로 이어지기 때문에요.

    제가 비영리 동물보호단체에서 몇 년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드문드문 느꼈던 분노가 작품에 녹아든 것 같아요. 저도 동물의 문제는 곧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동물 대상으로 일어나는 범죄들은 인간 세계의 차별, 폭력과 꼭 닮아 있으며 그 연장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또, 여성을 대상으로 한 스토킹 범죄의 끝이 살인이라는 걸 많은 사례를 통해 경험했는데도 여전히 스토킹 범죄를 남녀 간의 사사로운 문제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현상도 지적하고 싶어요. 그 무수한 무심의 순간들이 여성, 그리고 동물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5

너무 많은 교차적 차별

 

들불 : 인종차별은 굉장히 저열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김영호가 명하에게 한국어 진짜 잘 한단 말이야. 베트남어로 이건 뭐라고 하지?라는 식의 불쾌한 농담을 하는 것처럼요. 차별을 당하는 당사자가 아니라면 이 말을 정말 ‘농담으로만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 문제에 대한 인식도 더딘 것 같고요.

 

 : 한국은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 국가라고 알고 있지만, 다문화권 국가가 되어가면서 인종차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그냥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었고, 실제로는 옛날부터 어마무시하게 인종 차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들불 : 맞아요. 외국에서 백인이 흑인과 아시아권 사람들을 차별하는 방식만이 인종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한국 역시도 외국의 사례만큼이나(어쩌면 그 이상) 차별을 자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동물에 대한 폭력을 성차별 문제와 연결하여 이야기해주셨던 것처럼, 인종차별 역시 성차별과 무관하지 않음을 작품에서 보여주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결성을 토대로 한 페미니즘을 상호교차적인 관점에서의 페미니즘이라고 말하는데, 이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좀 더 들어보고 싶어요.

 

 : 페미니즘은 결국 모두를 위한 운동으로, 배타적 사상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특정 성소수자를 배척하거나 하는 페미니즘을 진정한 그것이라 볼 수 없다 생각하고요. 다섯 번째 에피소드인 ‘아가베’에서는 여성 중에서도 더 차별받는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은 명백하게 인종 차별이 팽배한 국가예요. 한국 여성이 타국 남성과 국제결혼 하는데 그 남성의 국적이 대부분 베트남인이라는 보도에 사람들이 문의를 넣고, 법무부에서 보도 정정까지 해가며 상대 남성의 국적 1위가 베트남이 아님을 발표까지 하는 이상한 국가죠. 여기에는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섞여있어요. 도대체 그게 왜 궁금한 걸까요? 너무 차별이 많아 어떤 게 차별이고 아닌지 구분하기 힘들어진 걸까요?

    더불어 소설 내에서는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동남아시아 여성’을 바라보는 ‘한국 남성’들의 차별적인 시선 또한 은연 중에 드러나기를 바랐어요.

 

 

6

여자아이들이 안전한 사회

 

들불 : 최종편에서 유희는 오랜 트라우마를 남긴 가해자를 만나요. 중학생 때의 일로 현재까지 괴로워하는 유희의 모습에서, 몸과 마음에 상흔을 남기는 폭력의 무자비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끝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작가님이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덧붙일 이야기가 있을까 싶어요. 여성이 죽어나가지 않는 사회가 올 수 있을까, 그런 사회가 오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가 고민입니다.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여자아이들’이 안전한 사회를 만나고 싶습니다.

 


 작품 전체에 대하여

※ 작품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소설을 먼저 감상하신 뒤 읽으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작품 먼저 읽고 오기




사적 처벌에 관해

 

들불 : <식물, 상점>은 여성들이 겪는 위협과 공포를 크게 5~6가지 에피소드로 구분하여 다루는 소설입니다. 고통 속에 있는 인물을 그리는 데에 그치지 않고 주인공 유희가 문제를 (조금은 과격하게) 해결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요. 어째서 유희는 사적 처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요? 유희가 사적 처벌을 선택하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 여성들이 당하는 폭력은 언제나 ‘사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왔어요. 과거도 그랬고 현재도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정폭력 금지 캠페인이 매년 열리지만, 실제로 신고 빈도와 처벌 빈도는 여전히 미미한 편이라고 해요. 그 이유는 역시 보복이 두려워서라 생각합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당하는 폭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일어나는 폭력은 항상 여성을 사각지대에 머물게 만들죠. 어쩌다 용기내어 신고해도, 돌아오는 건 더 큰 압박과 더 거센 폭력, 최악의 경우 신고자의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열거하자면 너무 많은 이런 경우들을 보며, 이렇게나마 해소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되지 않는 사회니까요. (동일 범죄에 있어서도 언제나 여자들이 더 주목 받는다.)

 

들불 : 유희는 차분하고 내향적인 사람임에도 다른 여성들을 위한 사적 처벌을 행하는 해결사를 자처합니다. MBTI로 보자면 극 내향인인 대문자 I에 가까운 성격인데요, 찐 내향인 유희가 다른 여성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던 계기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 사실 유희를 내향과 외향 어딘가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원래 소심한 성격은 아니었고 내향인이라면 행동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고 있으니 소위 말하는 MBTI의 극 I라고 보긴 좀 어려울 것 같은데요.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쓸데없는 말을 잘 하지 않는 유희가 먼저 손을 내민 계기는 역시 ‘자신도 겪어봤기 때문’ 아닌가 싶어요. 자신과 같은 고통을 다른 여자들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 고리를 끊고자 행동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들불 : ‘사적 처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통쾌함을 안겨주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기에 희망적으로 끝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식물, 상점>의 인물들이 겪는 불안과 공포 너머의 희망, 그들의 내일이 궁금해지기도 했는데. 유희를 포함해 살아 남은 여성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 모두가 완전히 행복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극에 등장할 때보다는 아주 무겁고 억압되는 짐을 내려놓고 평온한 표정으로 살아갈 거라 생각해요.

    가장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건 3화에 나오는 고등학생 이민하입니다. 민하는 오랜 시간 가정폭력에 시달렸고, 그 때문에 항상 좋지 않은 기억이 녹아있는 자신의 고향에서 나오고 싶어했어요. 민하는 유희의 도움으로 이후 바라던 대로 고향을 떠나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새 삶을 시작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 신경 쓰는, 그런 삶을 살게 되겠죠. 아마 길고양이나 강아지를 입양했을지도 모를 일이고요. 여전히 좋아하는 키링 인형을 여기저기 주렁주렁 달며, 눈을 반짝이지 않을까요? 극중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 중 민하가 가장 행복했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 묵혀둔 숙제를 해소한 유희는 다소 열린 결말로 두고 싶어요. 이제 그녀의 인생에서 걸림돌은 없잖아요.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상점을 찾아오거나 혹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다른 여성들을 도울지에 대한 물음표는 앞으로 더 즐겁게(ㅎㅎㅎ)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들불 : 최근 영화나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에서 사적 처벌을 가하는 주인공이 자주 등장하고 있어요. 이러한 콘텐츠들이 큰 호응을 받는 걸 보면 많은 분들이 공적 처벌의 수위에 아쉬움과 분노를 느끼고 계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사적 처벌을 행하는) 주인공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사적 처벌에 대한 논의에 다시금 불이 붙은 것 같아요. 특히 사적 처벌을 옹호할 수 있느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죠. 이러한 논의에 대해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 말씀하신대로 사적 처벌을 다루는 다른 콘텐츠들이 많지만, 오늘은 <식물, 상점>의 사적 처벌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볼게요. 사적 처벌은 범법임이 맞아요. 하지만 앞서 한번 말씀 드린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탈출구를 제시하고 싶었어요. 여성 대상 범죄는 범죄의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여성이 보복이 두려워 숨거나 혹은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경우로 맺음되곤 합니다. 정말로 용기내어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고 사회적 구조를 바꾸기 위해,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처벌 기준은 터무니 없이 낮아요. 누군가 한 명은 죽어야 끝나는 사건의 연장에서 언제나 먼저 스러지는 건 여성입니다. 그 기울어진 판을 뒤집고 싶었어요.

 

 

작품의 메시지에 대해

 

들불 : 작품이 진행되면서 유희가 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신의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에 맞선 후 후련함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는 장면에서 마음이 좋지 않은 한편 조금은 위로를 받기도 해 복잡한 심정이었어요. 트라우마로 인해 불안을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 이 작품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은데요. 작품을 통해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 이 질문에서 가장 오랜 시간 고민했어요. 누군가는 반드시 당신을(우리를) 도와줄 테고, 그런 사람들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혼자 앓지 말고 꼭 믿을 만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해소할 수 있기를 바라요. ‘유희’는 그 모든 걸 혼자 감당하고 해소했지만, 이 소설을 읽을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작가의 안팎

나를 이해하는 사람 딱 하나만

 

들불 : 작가님의 작품은 주로 여성의 연대와 자유, 자립을 다루는데요, 특히 소설 속 주인공들이 상황을 회피하거나 관망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결국 서로를 구원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되곤 합니다. <전력 질주>의 김설과 최진, <부디, 얼지 않게끔>의 희진과 인경, <이제 그만 여기서 나가자>의 화영과 유희가 그렇듯이요. 소설 속 주인공은 조용하고 차분하고 잔잔한 것만 같지만 다른 여성의 손을 잡거나 쉼터가 되어주거나 하며 연대 이상의 행동을 기대하게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로 나아가게 하는 작가님의 동력은 무엇일까요?

 

 :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딱 하나만 있다면 세상은 견딜 만하다, 라는 생각으로 늘 소설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기에 늘 ‘나’와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고요.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겹치는 힘, 그리고 서로 “그런데 이름이 뭐예요?”라며 말을 트게 되는 그 순간의 힘이 내가 소설을 쓰게 하는 가장 큰 동력입니다. 요즘은 소위 ‘여성 서사’가 대세라곤 하지만 우리에겐 여성의 이야기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에 계속해서 여성의 이야기를 앞으로도 주로 쓰지 않을까 싶어요.

 

들불 : <식물상점>을 쓰며 전작과 다르게 의도한 점캐릭터 측면에서 전작들에서는 서로를 알아차림 연대 – 다음을 위한 한 보 후퇴로 다소 소극적인 형태의 구원이 이루어졌다면, <식물상점>의 주인공 유희는 비로소 과감하게 여자들을 구하는 인물로 다른 작품 주인공들 중 가장 단단한 외피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 단계 진화한 인물을 쓰는 데에는 어떤 의미 혹은 변화가 있었을까요?

 

 : ‘다 죽여, ㅇㅇ야’ 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진화라기보단 이런 사람도 있고, 이렇게까지 가야만 해방되는 캐릭터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적극적이거나 소극적이거나 일단 두 사람이 만나면 연대가 되지만그 연대조차 이루지 못하고 계속 바닥으로 내려가는 여자들을 끌어 올려 안전 궤도에 정착시키도록 돕는 당연히 같은 여자여야 했어요.

 

들불 :  혹시 구상 중이신 다음 소설에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할지 살짝 먼저 얘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 항상 그럴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해요. 창작이든 실제든 더 알려져야 하고, 더 많이 떠돌아다녀야 하는 것이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작업 중인 다음 소설은 게임 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명확히 여성의 것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이후에는 주 캐릭터가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소설을 기획하고 있어요. 애증으로 똘똘 뭉친 ‘기 센’ 여성 둘을 주인공으로 잡고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