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농담, 응시, 어수선한 연결』 저자 김슬기, 김지수 서면 인터뷰


   고은 : 이 책은 공연예술 연구자인 글쓴이 김슬기씨가 극단 ‘애인’에서 훨체어를 탄 ‘연극하는 김지수’씨를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니 이 책이 단순한 구술생애사 혹은 인터뷰 책이라기보단, 장애 극단에서 활동한 두 분의 우정이 담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분의 관계가 우정으로 접어드는 변곡점이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김지수

   정확히 어느 순간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책에도 나와있듯이 2019년에 처음 만나서 공연 준비를 하게 되었는데 그 공연이 극단 애인의 단원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했어요. 그리고 2020년에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정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했죠. 우리는 항상 바로 가까이에서 관객과 호흡하면서 연극을 해왔고, 직접 만나지 않는 방법의 연극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무대에서 관객을 만날 수 있을지 확신 할 수 없었고, 모든 것이 너무나 불확실하고 불안했어요. 그 기간에도 장애연극을 둘러싼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고요, 그런 2년여의 시간 동안 저희 극단도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겪게 되었는데 그동안에도 꾸준히 김슬기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인터뷰 중에 김슬기 선생님께서 저 자신과 제 삶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 연극계와 세상을 향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질문들을 해주셨어요. 답을 하면서 저의 안팎을 돌아보게 되었고요. 제가 겪고 있는 사회와 저의 삶을 이해 하면서 들으려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큰 위로였어요. 그리고 김슬기 선생님은 극단 단원들과 장애배우를 위한 연기 워크숍 프로그램도 함께 준비하면서 3년째 희로애락을 겪고 있는 중이어서 앞으로 이 우정이 더 깊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슬기

   시간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그리되었겠지요. 기억에 남는 여러 순간들이 있지만, 아주 근본적으로는 극단 애인의 단원분들이 직접 설계하고 진행하는 워크숍을 함께하면서부터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보통 그것이 어떤 성격의 인터뷰이든 인터뷰가 끝나면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는 헤어지게 되는데요. 저는 이 워크숍 덕분에 지수 선생님과 아주 가까이 긴 시간을 진득하게 붙어 있을 수 있었고, 또 그러는 동안 일상과 연극 창작의 연장선상에서 지수 선생님이 들려주셨던 많은 이야기들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었어요. 누구의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고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무언가를 하다 보면 당연히 난관에 부딪히고 그것들을 풀어내는 과정을 거치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고, 의지하게 되기도 하고요. 지수 선생님이 기꺼이 제게 그 공간을 열어주신 거죠.

   고은 : 김슬기씨에게 김지수씨를 만나는 일은 한국사회에서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 당사자이자 장애연극 창작자, 즉 자신과 다른 존재를 만나고 알아가고 교차하는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책 특성상, 김지수씨에게 김슬기씨를 만나는 경험은 어떤 사건이었는지 자세히 적혀있지 않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김지수씨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김지수

   저와 저희 극단 애인이 2016년 부터는 정말 꾸준히, 일 년에 한 두 작품을 올려왔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장애연극, 장애인 배우의 연기 혹은 장애예술에 대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이 없었어요. 극단 애인 단원들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극단의 작품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김슬기 선생님을 만나면서 많은 질문을 받게 되었죠. 저 또한 김슬기 선생님께서 공연 연구를 하시니까 장애연극, 혹은 장애인 극단, 장애배우에 대해서 연구를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고요. 그래서 이야기를 하고,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께서 선택하신 연구 방법이 구술생애사였기 때문에 연극을 넘어 저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도 구술을 하게 되었죠. 


   앞에서도 썼지만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마음먹고 모든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얼마나 큰 에너지와 마음이 소모되는 일인지 잘 알기 때문에 그 과정을 묵묵히 이겨내시는 김슬기선생님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저는 50세를 넘어서게 되었는데 그 시기와 맞물려 또 생전 처음 해보는 일들과 마음의 변화에 대해서도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뭐랄까 오래 만나지는 않았지만 심리적으로 예전부터 가까이에 있었던 친구(지인)가 있는 듯 든든하게 느껴졌어요. 힘이 되었죠. 물론, 저의 착각일 수 있습니다, 하하.     

 

   고은 : 김슬기씨는 ‘프롤로그’에서 책을 쓰면서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비판하거나 자신의 시각을 성찰하는 것을 넘어서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생겨났다”는 경험을 했다고 적어주셨습니다. 비판적으로 보거나 스스로 성찰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어떻게 다른가요?

김슬기

   처음엔 사회를 비판하는 일이 너무나 쉬웠어요. 지수 선생님 생애사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일상의 무수한 순간들이 얼마나 비장애중심적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전엔 미처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과연 사회를 비판할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모든 걸 새롭게 알았다는 것은, 결국 그런 비장애중심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나도 일조했다는 뜻일 테니까요. 그러다보니 또 끝도 없이 자기 성찰을 하게 되는데, 그게 쌓이면서 성찰 자체도 굉장히 쉬운 선택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성찰하는 나를, 나 스스로가 기특해하고 있는 것 같았달까요.

   그렇게 책을 쓰다가 어떤 말도 더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한테 지수 선생님이 해준 농담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면 정말 순식간에,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서로간에 엄청난 공감대가 만들어지더라고요. 왠지 공범이 된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한데 외롭지는 않은 것 같고, 그런 이상한 감각이었어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지,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가는 것 같았거든요.


   고은 : 김슬기씨는 김지수씨가 자신의 장애를 농담거리로 삼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이를 성찰하며 장애에 어떤 편견이나 차별, 혐오의 낙인이 없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쓰고 있습니다. 김슬기씨는 이 사건 이후로 일상에서 조금 더 자유롭게 장애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는지, 그러니까 장애로 농담을 할 수 있게 되었는 궁금합니다.


김슬기

   아직 장애로 농담을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수 선생님 농담에는 잘 웃게 됐고요. 그 농담들에 함께 웃을 수 있게 된 것도 저한테는 엄청난 변화였어요. 나는 왜 웃지 못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고요. 저는 정말로 장애가 결함이라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의 결함을 두고 웃으면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정색을 했던 거였으니까요.

   그런데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한 사람의 장애는 그 사람만의 고유성인 거잖아요.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장애가 없는 다른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권리를 가질 수 없는 사회가 문제인 거지요. 지수 선생님의 농담은 이런 세계에 대한 너무나 따끔한 통찰을 담고 있어요. 언젠가 제게도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는데, 저는 여전히 배워가는 중입니다. 지금은 지수 선생님의 농담을 여기저기, 멀리멀리, 퍼뜨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고은 : 책에서 김지수씨는 “장애가 세상을 바꾸는 조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녹진한 경험들이 이 말에 녹아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책을 읽었는데요. 혹시 장애인 극단 ‘애인’을 15년간 꾸려나가면서 이 말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이 있었다면, 아주 작은 경험이라도 좋으니 저희에게 하나 공유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김지수

   아주 눈에 뜨이는 무엇이 생겨났다거나, 무엇을 만들어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연극계에서 장애인 극단, 장애연극, 장애연극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장애배우들과 작업 하고자 하는 비장애 연극인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실감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작업하기 위해서는 편의 시설이 갖추어진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 것, 또 그것이 배려가 아니라 '권리'라고 인식하고 있는 비장애 연극인들도 많고요. 이런 환경을 만들어내려고 하고 공연을 향유할 장애인 관객들의 접근성까지 고민하는 예술가들이 많아졌다는 것이 지난 시간의 진가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장애인 극단과 장애연극인들이 '존재' 했기 때문이죠.




인터뷰어
김고은
장애인의 사랑과 성을 주제로 한 세미나 <사랑을 퀴어링!>을 진행하였고, 동양고전을 공부하며 다르게 사는 삶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초등학생들과 한문-예술 수업을 하고, 타인과 관계 맺는 방법을 살피는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이
김슬기

공연예술 연구자, 드라마투르그.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한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고 일상과 연극, 연극과 사회가 만나는 방식을 고민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 연극원 연극학과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문화매개 전공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는 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in》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김지수
연출가, 극작가, 배우, 휠체어를 탄 ‘연극하는 김지수’이며 극단 애인 대표. 여러 사람들의 작업이 하나의 무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좋아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꼭 하나 배우고 싶은 꿈이 있다.

2003년부터 장애인 극단에서 연극을 했다. 배우가 행복한 극단을 만들고 싶어서 2007년에 애인을 창단했다. <고도를 기다리며>,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 <한달이>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위원회 위원, 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in》 편집위원 등을 지냈고, 장애인 동료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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