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개정되어 나온 강영숙의 <라이팅 클럽>은 앞뒤를 빼곡한 서재 사진으로 두른 표지를 보고 나면 언뜻 지적인 세계로 초대되는 듯한 기분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라이팅 클럽을 빠져나오면서 제가 느낀 건 ‘여긴 좀 너저분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 혼자 책 읽고 싶다’에 가까웠어요. 그곳에서 만난 누군가가 이해되지 않거나, 미워서는 아니었습니다. 역시, 글쓰기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덩어리가 되고 무리 짓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어졌기 때문일 텐데요. 하지만, 정기적으로 참여할 의향은 없더라도 잊을만하면 한 번쯤 들르고 싶어지는 곳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이 얘기를 듣는다고 글쓰기 교실 사람들이 서운해 하지는 않겠죠?
서울시 종로구 계동 X dosii ‘추억속의 그대’
<라이팅 클럽>에는 구체적인 지명들이 연달아 등장합니다. 실제로 ‘라이팅 클럽'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은 뉴저지의 해컨색 뿐이었지만요. 계동의 글쓰기 교실에서 시작해 J작가가 선호하는 창가석이 있는 어느 카페, 잠시 문화센터의 글쓰기 워크숍을 지나, 생업이 끝나면 시작되는 돈키호테 북클럽, 라이팅 클럽, 그리고 다시 계동으로 돌아오게 되는데요. 공간적 배경이 계동인 이 책의 마지막 챕터에서 떠오른 곡은 지금으로부터 가장 최근 시점에 리메이크 되었을 오래된 노래였어요.
dosii의 ‘추억속의 그대'는 올 5월에 발매된 리메이크 앨범 [반향]의 수록곡입니다. “희미해지는 지난 추억속의 그 길을 이제 다시 걸어볼 수 없다 하여도”로 시작하는 dosii가 부르는 이 한 줄은 엄청나게 많은 길을 돌아서 다시 계동으로 돌아온 주인공 영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요. 수많은 장소들을 지나쳐 가장 익숙한 곳으로 돌아왔지만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끝까지 알 수 없었던 적이 있다면, 이 곡입니다.
라이팅 클럽 창단식 X 이진아 ‘계단’
한 번이라도 독서 모임을 참여해본 적이 있다면 모임의 운영 수칙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뻐렁쳐본 적이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그랬거든요. ‘이렇게 모여서 이걸 다 지키면 너무 아름다울 것 같다’라는 생각을 소리 내서 말하진 않았지만 먼 훗날의 그림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던 날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라이팅 클럽' 사람들은 모임 첫날 운영 수칙 다섯 개 중에 네 개가 공유될 즈음 즉흥적으로 허드슨강에 산책을 떠나버립니다. 걸어간 것도 아니고 거리를 보아하니 아마 우버 같은 걸 불렀던 것 같아요.
야심 차게 모임을 시작하려는데 초를 치는 사람들, 그리고 나만의 계획이 이미 많이 남아있지만 거스를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면, 저는 약간 망연자실해져서 이진아의 ‘계단'을 듣습니다. 계획이 차곡차곡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도입부가 돌연 산뜻해졌다가, 조금만 지나면 내가 의도한 대로 모든 게 움직여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간주로 이어지는, 이진아의 피아노 연주를 꼭 완곡으로 들어보세요.
보리차에 입이 데인 순간 X 헤이즈 ‘작사가'
영인은 글을 쓰고 싶었던 첫 번째 순간을 “안채 할머니의 마루에서 뜨거운 보리차에 입안을 데었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p.58) 라고 말합니다. 보리차가 그의 취향이었는지는 알 수 없고, 종종 아껴 읽었다던 두 권의 책인 시몬 베유의 <노동 일기>나 세르반테스의 <돈키 호테>만 두고 봐도 그가 어떤 유형의 글을 좋아하는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싶었던 순간을 맞이해버린 탓에 영인은 계속해서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죠.
헤이즈의 ‘작사가'는 그간 이어졌던 러브스토리 서사에서 빗겨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헤이즈를 보여주는 곡입니다. “하필 작사가가 돼 난 널 얘기해야 해”, “난 내 글 안에선 널 지켜주지 못해” 같은 가사가 나오는데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영인이 쓰는 사람으로 사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걸 보았습니다. 어쩌면 이건 다 보리차가 뜨거웠기 때문이 아니었던 걸까 하고요. 마치 이 곡의 가사처럼요.
by ㅎㅇ
ㅎㅇ
뉴스레터 ㅎ_ㅇ의 발행인이자 케이팝 비둘기. 한 달에 한 권, 들불이 선정한 책과 k-pop을 연결합니다.
curator’s comment:
10년 만에 개정되어 나온 강영숙의 <라이팅 클럽>은 앞뒤를 빼곡한 서재 사진으로 두른 표지를 보고 나면 언뜻 지적인 세계로 초대되는 듯한 기분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라이팅 클럽을 빠져나오면서 제가 느낀 건 ‘여긴 좀 너저분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 혼자 책 읽고 싶다’에 가까웠어요. 그곳에서 만난 누군가가 이해되지 않거나, 미워서는 아니었습니다. 역시, 글쓰기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덩어리가 되고 무리 짓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어졌기 때문일 텐데요. 하지만, 정기적으로 참여할 의향은 없더라도 잊을만하면 한 번쯤 들르고 싶어지는 곳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이 얘기를 듣는다고 글쓰기 교실 사람들이 서운해 하지는 않겠죠?
<라이팅 클럽>에는 구체적인 지명들이 연달아 등장합니다. 실제로 ‘라이팅 클럽'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은 뉴저지의 해컨색 뿐이었지만요. 계동의 글쓰기 교실에서 시작해 J작가가 선호하는 창가석이 있는 어느 카페, 잠시 문화센터의 글쓰기 워크숍을 지나, 생업이 끝나면 시작되는 돈키호테 북클럽, 라이팅 클럽, 그리고 다시 계동으로 돌아오게 되는데요. 공간적 배경이 계동인 이 책의 마지막 챕터에서 떠오른 곡은 지금으로부터 가장 최근 시점에 리메이크 되었을 오래된 노래였어요.
dosii의 ‘추억속의 그대'는 올 5월에 발매된 리메이크 앨범 [반향]의 수록곡입니다. “희미해지는 지난 추억속의 그 길을 이제 다시 걸어볼 수 없다 하여도”로 시작하는 dosii가 부르는 이 한 줄은 엄청나게 많은 길을 돌아서 다시 계동으로 돌아온 주인공 영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요. 수많은 장소들을 지나쳐 가장 익숙한 곳으로 돌아왔지만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끝까지 알 수 없었던 적이 있다면, 이 곡입니다.
한 번이라도 독서 모임을 참여해본 적이 있다면 모임의 운영 수칙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뻐렁쳐본 적이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그랬거든요. ‘이렇게 모여서 이걸 다 지키면 너무 아름다울 것 같다’라는 생각을 소리 내서 말하진 않았지만 먼 훗날의 그림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던 날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라이팅 클럽' 사람들은 모임 첫날 운영 수칙 다섯 개 중에 네 개가 공유될 즈음 즉흥적으로 허드슨강에 산책을 떠나버립니다. 걸어간 것도 아니고 거리를 보아하니 아마 우버 같은 걸 불렀던 것 같아요.
야심 차게 모임을 시작하려는데 초를 치는 사람들, 그리고 나만의 계획이 이미 많이 남아있지만 거스를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면, 저는 약간 망연자실해져서 이진아의 ‘계단'을 듣습니다. 계획이 차곡차곡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도입부가 돌연 산뜻해졌다가, 조금만 지나면 내가 의도한 대로 모든 게 움직여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간주로 이어지는, 이진아의 피아노 연주를 꼭 완곡으로 들어보세요.
영인은 글을 쓰고 싶었던 첫 번째 순간을 “안채 할머니의 마루에서 뜨거운 보리차에 입안을 데었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p.58) 라고 말합니다. 보리차가 그의 취향이었는지는 알 수 없고, 종종 아껴 읽었다던 두 권의 책인 시몬 베유의 <노동 일기>나 세르반테스의 <돈키 호테>만 두고 봐도 그가 어떤 유형의 글을 좋아하는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싶었던 순간을 맞이해버린 탓에 영인은 계속해서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죠.
헤이즈의 ‘작사가'는 그간 이어졌던 러브스토리 서사에서 빗겨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헤이즈를 보여주는 곡입니다. “하필 작사가가 돼 난 널 얘기해야 해”, “난 내 글 안에선 널 지켜주지 못해” 같은 가사가 나오는데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영인이 쓰는 사람으로 사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걸 보았습니다. 어쩌면 이건 다 보리차가 뜨거웠기 때문이 아니었던 걸까 하고요. 마치 이 곡의 가사처럼요.
by ㅎㅇ
ㅎㅇ
뉴스레터 ㅎ_ㅇ의 발행인이자 케이팝 비둘기. 한 달에 한 권, 들불이 선정한 책과 k-pop을 연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