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xtape 들불 vol.3 실패한 여름휴가


curator’s comment:

속았습니다. 이 책의 표지는 전방이 민트색, 후방이 연보라색이에요. 괜찮은 조합일까? 머리로만 떠올려보면 잘 그려지지 않죠. 그런데 실물의 책을 집어서 앞 뒤로 흔들어보니 정말 그럴 듯하게 어울렸어요. 표지에는 불가리아 아티스트 George Stoyanov의 그림을 썼어요. 아귀가 맞지 않는 기둥 위에 몇 개의 도형들이 얹어져 있고, 그 아래 단단한 대리석 같은 지지대에는 어떻게 서있는지 모를 나뭇잎이 정자세로 고정되어 있어요. “어떤 소설일 것 같아?” 저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했죠. “부조리와 아름다움은 서로 너무 다르지만 가까스로 어우러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들일 것 같아!” 아니었어요. 그래서 제가 속았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실패한 여름휴가>를 읽으며 이 계절을 한껏 불안하게 마무리해보세요. 그래야 다시 우리에게 아름다운 표지,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의 시작을 마주할 힘이 생길지 모를테니까요.



페이퍼 컷 X 윤상 & 조원선 ‘넌 쉽게 말했지만’


   종이 남자가 A의 집에 찾아와 진술서를 쓰라고 요청합니다. 종이 남자는 마치 구몬 선생님 같아요. 그건 A가 하기로 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구몬 선생님이 존재 한다는 건, 구몬이 밀리는 학생 같은 사람이 많다는 반증이니까요. 극 중 종이 남자는 이 사람, 저 사람의 집을 돌아다니며 진술서를 수거하고, 크게 잘못한 내용도 없는 것 같은 A는 빨리 쓰고 끝내면 좋을 진술서를 쓰지 않고 버티는 최후의 1인이 됩니다. 대신 우리의 A는 눈 앞의 종이를 가지고 뭔가 일을 벌이기 시작해요.

   조원선 ‘넌 쉽게 말했지만'의 화자는 상대가 쉽게 말하는 듯한 “사랑하지 않아"를 들으며 쓸쓸해 합니다. 그럼 <페이퍼 컷> 속의 A는 어땠을까요? 여기 종이를 두고 갈테니 뭔가를 좀 써보라는 말은 종이 남자가 그동안 모든 사람들에게 쉽게 해왔던 말이었을 텐데요. 그 말을 듣는 게 쌓이고 쌓여 A가 폭발해버린 모습을 이 노래를 들으며 눈 앞에 다시 그려보게 됩니다.



파운드 케이크 X 원더걸스 ‘2 different tears’


   떠나간 이를 기다리던 주인공은 집 앞의 빵집에 들러 파운드 케이크 한 조각을 고릅니다. 그저 막연히 빵집인 줄로만 알았는데 파운드 케이크는 맛있고, 직원은 적당히 친절해요. 주인공은 그 다음 날에 다시 가게에 들러 같은 케이크를 한 판 어치 주문합니다. 이 중 대부분의 조각들이 내 입 속으로 들어가더라도, 꼭 마지막 한 조각만큼은 남겨서 그 사람이 돌아오면 재회를 기념하는 선물로 전해주어야지 하고 다짐을 합니다. 하지만, 더이상 케이크를 살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을 즈음 돌아온 이는 시덥잖게도 ‘아침밥이 먹고 싶어. 아주 많이.”(p.31) 라고 말합니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눈물이 많은 편인 사람이 왜 우느냐는 질문을 너무 자주 받아서 이런 노래를 만든게 아닐까 라고 넘겨짚기도 했었는데요. (아, 그런데 JYP님께서 작사를 하셨더군요.) 원더걸스 ‘2 different tears’는 너 때문에 기뻐서 울고, 슬퍼서도 운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랑하고, 그래서 미워한다고도 해요. 오래전부터 매일 준비했던, 케이크를 주고 싶었던 주인공의 마음 같은 걸 상대방은 알아차릴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결국 그가 돌아와서 반갑긴한데, 밥이 먹고 싶다니 어쩐지 허탈해지는 주인공은 문자 그대로 두 개의 다른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을까요. 



인컴플리트 피치 X 새소년 ‘나는 새롭게 떠오른 외로움을 봐요’


   해체를 앞둔 밴드 ‘인컴플리트 피치'의 온라인 팬 커뮤니티에는 대학생 때 밴드 동아리에서 기타를 쳤던 너무나 평범한 회원 중 한 명인 ‘백', 그리고 언제나 아티스트의 소식을 발빠르게 전하는 네임드 회원 ‘O’가 있습니다. 백은 O에게서 진작에 매진 된 인컴플리트 피치의 마지막 콘서트 표를 양도 받게 되는데, 자신이 O만큼 이 팀을 좋아하는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단지, 이 커뮤니티에 접속하는 것이 백에게는 매일의 리츄얼이 되었을 뿐이죠. 백은 다른 팬들이 적어놓은 포스팅의 조횟수가 아주 느리게 올라가는 걸 지켜보고 있을 때야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새소년의 ‘나는 새롭게 떠오른 외로움을 봐요'는 “눈을 뜬 오늘"부터 “아지랑이 피어오던 그 어느 밤”까지의 시간이란 결국 새롭게 떠오르는 외로움을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곡입니다. 회사에서도, 심지어 여름휴가지에서도! 이제는 해체하고 없는 밴드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해 O와 다른 회원들이 남긴 글들을 바라보는 백에게서 저는 매일 새롭게 떠오르는 외로움을 읽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는 아무런 새로운 일이 없는데, 매일 들어가는 사이트에서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며, 그렇게 해야만 갱신될 수 있는 혼자가 된 기분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이 곡과 함께라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매일의 리츄얼은 언제부터, 왜 생긴 건지, 답을 찾게 될 지도요.



by ㅎㅇ




ㅎㅇ

뉴스레터 ㅎ_ㅇ의 발행인이자 케이팝 비둘기. 한 달에 한 권, 들불이 선정한 책과 k-pop을 연결합니다.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