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xtape 들불 vol.4 라스트 러브


curator’s comment:

‘영원히 사랑할게' 라는 응원 구호가 ‘(네가 사고만 안 치면) 옛정은 유지할게' 라는 조건부 구호로 바뀌기까지, 제 경우 아이돌을 좋아하는 심장의 모양은 10대, 20대, 30대에 모두 달랐습니다. (그러니, 40대가 되어서도 그 모양은 지금과 다를 거라 예감해 보는 동시에, 40대 때도 아이돌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두고 있을 거라 예고해 봅니다.) 제가 스무살이 되면 그 오빠는 몇 살이 되는 건지 사칙연산을 해보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어느 걸그룹의 04년생 멤버가 하루에 여덟시간의 수면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아이돌로서 살아야 한다니 좀 너무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종종 해보게 되는데요. 

<라스트 러브>는 이미 일곱 곡의 케이팝 가사가 발췌되어 있는 TMI(too much idol) 소설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 세 곡을 더 얹어 보았습니다. 여느 정규앨범과 맞먹을 정도로 총 10개의 트랙과 함께하는 읽기가 감히 여러분에게 열 번째 감각, 열한 번째 감각을 깨울 수 있는 체험과도 같은 일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어 봅니다.


파인캐럿의 팬픽들 X 공원소녀 ‘birthday girl ~ 19 candles’

   

소설 <라스트 러브>에는 아이돌 ‘제로캐럿’ 멤버들이 등장하는 팬픽이 중간중간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팬이자 80부작의 팬픽을 연재 중인 ‘파인캐럿' 작가의 작품이죠. 그 중 <다섯 번째 계절>은 이런 얘기에요. 육상부원인 준희는 어느날 달리기 기록이 급격히 좋아져서 코치님에게 칭찬을 받습니다. 비결이 무엇이냐는 코치님의 질문에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싶어해요. “좋아하는 애가 있어요. 그 애를 보면서 달려요.” (네?) 한편, 다인은 친구들에게 간식을 사주면서 언제나 교실의 창가석을 사수합니다. 준희가 달리는 운동장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자리이기 때문이죠. (언제나 팬픽 속 단골 좌석은 창가석입니다. 그래도 다인이 ‘반짝이는 햇빛에 은빛 머리칼이 흔들거렸다’ 까지는 아니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저는 소설 속의 팬픽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공원소녀의 ‘birthday girl ~ 19 candles’를 떠올렸습니다. 공원소녀는 노래 제목에 평소에도 물결을 많이 넣는 팀인데요. 제목을 직역하자면 ‘생일을 맞은 소녀 ~ 19개의 촛불’ 입니다. 이보다 더없이 팬픽적 감성을 가진 곡은 아마 없을 거예요. 심지어 요즘 노래답지않게 곡이 확실한 맺음 없이 아련하게 볼륨이 점점 작아지며 fade out 된다는 점까지요.


올팬과 악개 X 소녀시대 ‘FAN’


   최애였던 멤버는 탈퇴했지만, 계속해서 올팬(팀의 모든 멤버를 좋아하는 팬)으로 지내기로 하는 데에 굳게 다짐할 필요도 없는 ‘파인캐럿’은, 마린을 사랑하는만큼 다른 멤버를 비난하는 악개(악성 개인팬) ‘온리마린'에게 딱히 어찌하지 못합니다. ‘왜 너는 나처럼 모두를 품지 못 해?’ 라며 탓하기 보다는 몇 번 마주쳤던 걸 계기로 그의 얼굴을 기억해둘 뿐입니다. 그건 ‘온리마린’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떻게 네 마음을 멤버 수에 맞게 고르게 나눠? 왜 멤버 하나만 전력을 다해 좋아하지 못 해?’ 라고 말하지 않죠. 

   소녀시대의 ‘FAN’은 완전체로서의 소녀시대가 마지막으로 발매한 정규 앨범의 수록곡입니다. 그들의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를 작업한 Kenzie가 작사/작곡/편곡을 담당한 곡이고, 무려 제목부터 ‘FAN’ 이에요! 전주 9초만 들어도 뻐렁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이 노래를 끝까지 듣고나면,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건 어차피 진정성의 농도를 잴 수 없는 일이고, 뭐라도 돌려받을 계획을 세운다면 늘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걸 저절로 알게 됩니다. 뭐라도 돌려받을 계획을 세운다면 늘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걸 저절로 알게 됩니다.



준이 받은 팬레터 X 레이디 제인 ‘매일 사랑해’ (feat. 버벌진트)


   '언제나 모든 일을 열심히 하는 준이 멋있다고 생각해요' 준은 팬레터에 적힌 말을 보면서 ‘열심히'라는 말의 자리에 ‘잘'이라는 말을 넣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모든 일을 잘하는 준'. (p.131)

   준은 제로캐럿에서 이것저것 다 잘하는 멤버의 포지션을 맡고 있어요. 잠시, 샤이니가 스스로를 소개할 때의 멘트를 빌려 오자면 그는 ‘만능열쇠 KEY’ 같은 거죠. 그런 준조차도 같은 팀 멤버인 마린은 탁월한 재능을 가졌고, 내심 자신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그러니까 이건 역시 노력과 재능에 대한 이야기에요. 아이돌의 세계 또한 그보다 더 넓은 세상이 그렇듯 ‘열심히 하는 사람'과 ‘잘 하는 사람'으로 채워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팬레터는 팬레터입니다. 쓰여져 있는 것 이상의 의도를 추측해서 읽을 필요는 없어요. 레이디 제인의 ‘매일 사랑해’는 대책없이 달달한 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팬레터는 있는 그대로 이렇게 읽어야 합니다. “너를 사랑해 사랑해 매일. 난 하루 종일 네 생각 뿐인걸." 아 그렇다고 하는구나. 준이 매일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길 바라며, 그리고 준 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돌들이 부디 나쁜 것보다는 좋은 것을 더 많이 보고, 듣고, 간직하길 바라며 이 곡을 보냅니다.



by ㅎㅇ



ㅎㅇ

뉴스레터 ㅎ_ㅇ의 발행인이자 케이팝 비둘기. 한 달에 한 권, 들불이 선정한 책과 k-pop을 연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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