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xtape 들불 vol.8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Curator’s Comment:

오늘은 2020년 12월 30일입니다. 한 해를 꼬박 하루하고도 몇 시간만 남겨두고 있네요. 아마 오늘이 오기까지 더없이 이상했던 한 해를 사느라 수고했다는 격려의 말들을 틈틈이 누군가와 주고받으셨으리라 짐작합니다.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책 이야기를 하는 모임이라니, 그것도 그 책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주인공이 배를 타고 섬으로 건너간다니! 모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요즘은 작품 속의 단촐한 ‘북클럽' 조차도 판타지의 한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건지 껍질감자파이 북클럽>을 처음 읽었던 건 2년 전인데, 다시 읽은 지금과 그때는 너무 많은 게 달라져버렸음을 실감합니다.

이 책은 1946년 1월부터 9월 17일까지 런던 내의 절친한 친구들이 또는 런던 거주민과 건지섬 사람들이 주고받은 편지들로 구성된 서간문 형식을 취하고 있어요. 주고 받는 편지들 사이의 리듬감이 ‘아 서간문의 매력이 이런 거였나!’ 싶은 감탄을 전해줍니다. 이번 큐레이션은 책 제목을 삼등분으로 쪼개어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서 연상 되는 곡들로 선곡했습니다. 계신 곳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편지의 리듬감과 음악의 멜로디에 둘러싸인 여러분의 연말연시 정경을 힘써, 떠올립니다.



'건지’ X 유아 ‘숲의 아이’


   줄리엣은 전국 투어 북토크를 다니면서,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다음 책으로 쓸 소재를 찾으며 살고 있는 분주한 도시의 작가에요. 2월 20일, 런던의 줄리엣이 건지섬의 도시에게 보낸 편지에는 지난번에 부친 편지와 함께 라일락을 보내줘서 고맙다는 인삿말이 있어요.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아니 2월인데 도대체 어떻게 라일락을 구했을까? 그런데 곧 기억해냈죠. 채널제도는 따뜻한 멕시코만류의 영향을 받는 축복받은 땅이라는 사실을요.”(p.87)

   도회지의 삶에도 충분히 흥미를 느꼈던 줄리엣은 채널제도에 속한 건지섬의 북클럽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배를 타고 그곳으로 향합니다. 그의 눈에 비친 건지섬에서의 첫 하루를 기쁨에 겨워하며 친구 소피에게 편지를 적어내리는데요. 그 텐션 높은 편지를 보면서, 유아의 ‘숲의 아이'가 떠올랐어요. 겨울에도 라일락이 피는 곳은 이 곡 가사처럼 “길을 잃으면 키가 큰 나무에게 물어야지"도 가능한 곳일 것 같아요. 듣고 있으면 눈 앞이 초록초록 해지는 오마이걸 유아의 보컬 입니다.



‘감자껍질파이’ X 이날치 ‘범 내려온다'


   ‘감자껍질파이가 대체 뭔데 그거 어떻게 먹는 건데’라는 생각을 아마 저만 한 건 아닐 거예요. 실은 돼지구이 파티로 시작 되었던 책 모임 이름에 ‘감자껍질파이'가 들어가고, 건지섬 사람들은 줄리엣을 위해 “말랑말랑한 마시멜로와 코코아 아이싱으로 장식"(p.213)한 특제 감자껍질파이를 굽기도 합니다. 맛도, 생김새도 상상 불가인 감자껍질파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임 이름에 겸연쩍게 들어 있는 감자껍질파이.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의 기분은 마치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를 처음 들었을 때의 심정과도 같았달까요. “누에머리를 흔들며, 양 귀 쭉 찢어지고,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이라며 범이 내려오고 있다는 이날치는 2분 10초부터 거의 45초 가까이 흐르는 간주 이후에도 꾸준히 같은 가사를 반복합니다. 간주를 중심으로 1부, 2부 모두 ‘범'을 묘사하는 데에만 충실한 이 곡은, 마침 2부로 구성된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감자껍질파이'라는 음식이 주는 강력한 인상을 지우지 못하는 것과도 닮았습니다.



‘북클럽' X 핫펠트 ‘나란 책'


   북클럽 회원들은 모두 처음부터 책을 좋아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1941년, 전시상황에서 독일군에게 점령을 받던 이들에게는 생존이 가장 중요했으니까요. 책 같은 건, 책 따위… 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중에는 줄리엣처럼 원래부터 책을 사랑했던 이도 있죠. “책 속의 작은 것 하나가 관심을 끌고, 그 작은 것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거기서 발견한 또 하나의 단편으로 다시 새로운 책을 찾는 거죠. 실로 기하급수적인 진행이랄까요. 여기엔 가시적인 한계도 없고, 순수한 즐거움 외에는 다른 목적도 없어요.” (p.22) 

   책을 중심으로 모여든 사람들에게로 향할 때 자신도 모르게 생겨나는 높은 기대치와 긴장감이 있지 않나요? 늘 그런 식인 저와는 달리,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사람들은 아주 유연해 보였습니다. 핫펠트의 ‘나란 책(Guitar Ver.)’ 같은 사람들이었어요. 우리가 어떤 책을 함께 읽는가도 중요하지만, 막막한 삶을 자기 안의 힘으로 밀고 나가는 것에 대하여 마치 나란 책을 펼쳐보이듯 이야기 하는 자리를 만드는 거예요. 2017년에 나온 곡을 원 기타 버전으로 편곡한 2020년 버전으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조금 더 따뜻한 기운이 감돌거든요.


by ㅎㅇ



ㅎㅇ

뉴스레터 ㅎ_ㅇ의 발행인이자 케이팝 비둘기. 한 달에 한 권, 들불이 선정한 책과 k-pop을 연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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