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 자세 교정에 도움이 될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답하자면, 그런 책은 아닙니다. 경직된 어깨와 굳어버린 듯한 척추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어서, 저는 언제나처럼 이미 늦어버린 듯한 기분으로 저에게 가장 익숙한 자세로 이 책을 읽었습니다.
‘OO동의 대중목욕탕’ 또는 ‘△△동의 사우나’를 확진자의 동선 정보를 알리는 뉴스에서 보고는 합니다. 김유담 소설가 또한 작가의 말에서 “코로나19 이전의 세계에서 썼던 원고를 코로나 시국에 고쳐 쓰면서 소설 속 상황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고 했는데요. 이야기의 안과 밖에서 편안하게 빠져들만한 자기만의 욕조를 가지지 못한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자기만의 방>을 연상시키기도 했습니다. 불도 꺼지지 않는 ‘24시만수불가마사우나’에서 흘러가는 매일의 시간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고, 그저 이야기에 빠져들어 보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오혜자가 김유라에게 “이 일은 생각이 많으면 못 한다”라고 한 것 처럼요.
냉탕에서 수영하는 오혜자 X 이소라 ‘track6’
누군가에게는 ‘때밀이'로 불리고, 아예 ‘여탕'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혜자는 지난 20년간 매일 24시만수불가마사우나에서 사람들의 때를 밀어주는 일을 해왔습니다. 딸인 유라가 보기에 오혜자는 “아프지도 않고 간지럽지도 않게, 적절하게 힘을 조절해 사람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프로 세신사였죠.
혜자는 공중목욕탕의 손님이 가장 적은 오전 시간대에 냉탕에 들어가 최선을 다해 발을 크게 움직이며 홀로 수영을 하는 루틴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끔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마음이 파란 타일처럼 시리다고 표현되어 있는데, 그건 엄마가 탕 속이 아닌 바다에 있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에요.
‘track 6’는 이소라의 정규 7집의 여섯 번째 수록곡 입니다. 앨범명이 [이소라]인데다가 수록된 열 세곡이 전부 별도의 제목 없이 넘버링만 되어 있어서, 곡에 대한 인상을 말할 때 ‘그 가사가 있었던 노래요' 라는 식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는 하는데요. 이 곡의 한 줄은 “여기 아니 거기 어디든 나 있는 곳 지금” 입니다.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것인지, 계속 여기에 있고 싶다는 것인지, 화자의 마음을 분명하게 가늠하지 못한 채로 노래가 끝나는데요. 아무도 혜자에게 직접 묻지는 못했습니다. 냉탕 욕조에서 물기를 털고 나와 바다로 가보는 건 어떻겠냐고요. 손사래를 칠지도 모르는 그에게 이 곡이 정답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어요.
여탕에 모인 여자들 X BIBI ‘비누’
이 소설의 표지에서는 공중목욕탕에 놓여있는 아이템들을 볼 수 있습니다. 시계방향으로 세숫대야, 환풍기, 모래시계, 목욕의자, 때수건, 라커룸의 열쇠. (...)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작품 속에서 적절한 비유로 쓰입니다. 이를테면, 유라는 “이따금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면 때수건으로 세게 민 것처럼 마음이 따끔따끔해지곤”하고, “우리 모녀의 삶은 늘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고 하며, 지난 연애를 “그들과 같이 있을 때면 건식 사우나실에 있는 것 처럼 답답했다”고 돌아봅니다.
<이완의 자세>의 첫 문장은 “나는 종종 공중목욕탕에서 우는 여자들을 본다”로 시작하는데요. 그곳은 동시에 소문들의 온상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모여 말 못할 슬픔을 덜어내기도 하지만, 필요 이상의 말들이 오가기도 하는 거예요. BIBI의 ‘비누’는 나쁜 마음을 다 벗겨내자고 말하는 노래입니다. 술냄새와 담배연기를 씻어내고 싶다고 하지만, 사실 루머와 시끄러운 소리를 상관하지 않고 그런 말들이 만들어낸 나쁜 마음들을 씻어내고 싶다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너랑 나랑 같이 비누하자”며 끝나는 이 곡을 여탕에 모인 모든 여자들에게 가볍게 들려주고 싶어요.
무용단 오디션을 포기한 김유라 X 티파니 ‘i just wanna dance’
여탕의 단골 손님 중에는 근처에서 고전 무용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윤금희 원장님이 있습니다. 그는 유라에게서 춤신춤왕스러운 역량을 발견하지 않았으면서도, 그저 무용을 한 번 배워보라고 말하죠. 결국 전공생까지 되어버린 유라에게 있어 춤을 추고 무대에 오르는 일은, 내가 주인공이 아닌 단역임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재능과 스포트라이트 같은 것들에 대해 누구나 치열하게 고민을 해야만 하는 건 아니고, 유라는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며 무용을 그만두게 됩니다.
윤금희 원장님은 무용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는 유라의 선택을 말릴 생각이 없어보입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말과 함께, 춤의 최고 경지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같은 사람은 그런 경지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자조 합니다. 그래서, 티파니 첫 번째 솔로앨범 타이틀곡인 ‘I just wanna dance’를 원장님과 대화를 막 끝낸 유라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춤을 향한 애정을 너무 뜨겁지 않게 적당한 온도로 들려주고, 보여주는 곡이기 때문이에요. 제목만 봤을 때는 엄청 퍼포먼스가 강렬한 노래 아닐까 싶지만, 곡의 정서는 ‘dance’ 보다는 오히려 ‘just wanna’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그냥 뭔가를 원했지만 지금은 아닐 수도 있죠. 언제나 자신 앞에 놓인 일과 사람에 대해 열정적으로 임하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여전히 자기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유라도 여러분도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완의 자세』
지은이 김유담 출판사 창비
빚을 갚고 딸을 부양하기 위해 여탕에서 때를 미는 세신사로의 인생을 시작한 엄마. 엄마에게 딸은 함께 부대끼며 살아야하는 짐스러운 존재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큰 희망이기도 하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는 딸 유라는,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는 동시에 축축한 여탕을 벗어나기 위해 성공한 무용가로서의 삶을 꿈꾸게 되는데.. 엄마와 유라의 바람과 달리 몸은 그저 끊임없이 씻겨주어야 하는 살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점차 강해지고.. 그러면서 춤은 무거워지게 된다. 이러한 처절한 자기 인식 끝에 유라는 결국 엄마에게 자신의 결정을 털어놓는다.
by ㅎㅇ
ㅎㅇ
뉴스레터 ㅎ_ㅇ의 발행인이자 케이팝 비둘기. 한 달에 한 권, 들불이 선정한 책과 k-pop을 연결합니다.
Curator’s Comment:
이 소설, 자세 교정에 도움이 될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답하자면, 그런 책은 아닙니다. 경직된 어깨와 굳어버린 듯한 척추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어서, 저는 언제나처럼 이미 늦어버린 듯한 기분으로 저에게 가장 익숙한 자세로 이 책을 읽었습니다.
‘OO동의 대중목욕탕’ 또는 ‘△△동의 사우나’를 확진자의 동선 정보를 알리는 뉴스에서 보고는 합니다. 김유담 소설가 또한 작가의 말에서 “코로나19 이전의 세계에서 썼던 원고를 코로나 시국에 고쳐 쓰면서 소설 속 상황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고 했는데요. 이야기의 안과 밖에서 편안하게 빠져들만한 자기만의 욕조를 가지지 못한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자기만의 방>을 연상시키기도 했습니다. 불도 꺼지지 않는 ‘24시만수불가마사우나’에서 흘러가는 매일의 시간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고, 그저 이야기에 빠져들어 보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오혜자가 김유라에게 “이 일은 생각이 많으면 못 한다”라고 한 것 처럼요.
누군가에게는 ‘때밀이'로 불리고, 아예 ‘여탕'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혜자는 지난 20년간 매일 24시만수불가마사우나에서 사람들의 때를 밀어주는 일을 해왔습니다. 딸인 유라가 보기에 오혜자는 “아프지도 않고 간지럽지도 않게, 적절하게 힘을 조절해 사람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프로 세신사였죠.
혜자는 공중목욕탕의 손님이 가장 적은 오전 시간대에 냉탕에 들어가 최선을 다해 발을 크게 움직이며 홀로 수영을 하는 루틴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끔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마음이 파란 타일처럼 시리다고 표현되어 있는데, 그건 엄마가 탕 속이 아닌 바다에 있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에요.
‘track 6’는 이소라의 정규 7집의 여섯 번째 수록곡 입니다. 앨범명이 [이소라]인데다가 수록된 열 세곡이 전부 별도의 제목 없이 넘버링만 되어 있어서, 곡에 대한 인상을 말할 때 ‘그 가사가 있었던 노래요' 라는 식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는 하는데요. 이 곡의 한 줄은 “여기 아니 거기 어디든 나 있는 곳 지금” 입니다.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것인지, 계속 여기에 있고 싶다는 것인지, 화자의 마음을 분명하게 가늠하지 못한 채로 노래가 끝나는데요. 아무도 혜자에게 직접 묻지는 못했습니다. 냉탕 욕조에서 물기를 털고 나와 바다로 가보는 건 어떻겠냐고요. 손사래를 칠지도 모르는 그에게 이 곡이 정답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어요.
이 소설의 표지에서는 공중목욕탕에 놓여있는 아이템들을 볼 수 있습니다. 시계방향으로 세숫대야, 환풍기, 모래시계, 목욕의자, 때수건, 라커룸의 열쇠. (...)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작품 속에서 적절한 비유로 쓰입니다. 이를테면, 유라는 “이따금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면 때수건으로 세게 민 것처럼 마음이 따끔따끔해지곤”하고, “우리 모녀의 삶은 늘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고 하며, 지난 연애를 “그들과 같이 있을 때면 건식 사우나실에 있는 것 처럼 답답했다”고 돌아봅니다.
<이완의 자세>의 첫 문장은 “나는 종종 공중목욕탕에서 우는 여자들을 본다”로 시작하는데요. 그곳은 동시에 소문들의 온상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모여 말 못할 슬픔을 덜어내기도 하지만, 필요 이상의 말들이 오가기도 하는 거예요. BIBI의 ‘비누’는 나쁜 마음을 다 벗겨내자고 말하는 노래입니다. 술냄새와 담배연기를 씻어내고 싶다고 하지만, 사실 루머와 시끄러운 소리를 상관하지 않고 그런 말들이 만들어낸 나쁜 마음들을 씻어내고 싶다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너랑 나랑 같이 비누하자”며 끝나는 이 곡을 여탕에 모인 모든 여자들에게 가볍게 들려주고 싶어요.
여탕의 단골 손님 중에는 근처에서 고전 무용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윤금희 원장님이 있습니다. 그는 유라에게서 춤신춤왕스러운 역량을 발견하지 않았으면서도, 그저 무용을 한 번 배워보라고 말하죠. 결국 전공생까지 되어버린 유라에게 있어 춤을 추고 무대에 오르는 일은, 내가 주인공이 아닌 단역임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재능과 스포트라이트 같은 것들에 대해 누구나 치열하게 고민을 해야만 하는 건 아니고, 유라는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며 무용을 그만두게 됩니다.
윤금희 원장님은 무용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는 유라의 선택을 말릴 생각이 없어보입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말과 함께, 춤의 최고 경지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같은 사람은 그런 경지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자조 합니다. 그래서, 티파니 첫 번째 솔로앨범 타이틀곡인 ‘I just wanna dance’를 원장님과 대화를 막 끝낸 유라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춤을 향한 애정을 너무 뜨겁지 않게 적당한 온도로 들려주고, 보여주는 곡이기 때문이에요. 제목만 봤을 때는 엄청 퍼포먼스가 강렬한 노래 아닐까 싶지만, 곡의 정서는 ‘dance’ 보다는 오히려 ‘just wanna’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그냥 뭔가를 원했지만 지금은 아닐 수도 있죠. 언제나 자신 앞에 놓인 일과 사람에 대해 열정적으로 임하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여전히 자기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유라도 여러분도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은이 김유담
출판사 창비
빚을 갚고 딸을 부양하기 위해 여탕에서 때를 미는 세신사로의 인생을 시작한 엄마. 엄마에게 딸은 함께 부대끼며 살아야하는 짐스러운 존재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큰 희망이기도 하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는 딸 유라는,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는 동시에 축축한 여탕을 벗어나기 위해 성공한 무용가로서의 삶을 꿈꾸게 되는데.. 엄마와 유라의 바람과 달리 몸은 그저 끊임없이 씻겨주어야 하는 살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점차 강해지고.. 그러면서 춤은 무거워지게 된다. 이러한 처절한 자기 인식 끝에 유라는 결국 엄마에게 자신의 결정을 털어놓는다.
by ㅎㅇ
ㅎㅇ
뉴스레터 ㅎ_ㅇ의 발행인이자 케이팝 비둘기. 한 달에 한 권, 들불이 선정한 책과 k-pop을 연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