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xtape 들불 vol.11 모두의 친절



모두의 친절 X 박정현 ‘You don’t know me’ (with 이이언)



   표제작 ‘모두의 친절’은 선의가 불러올 수 있는 가장 피곤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는 나에게 옆집에 사는 언니가 매일 아침 자신의 아이를 맡기는데, 이웃간의 넘치는 정에도 상한선이라는 게 있게 마련이지요. 조금이라도 감사하다는 기미를 내비치지 않는 옆집언니, 한 번 호의를 베풀었다가 매일의 당연한 일인 듯 돌봄노동을 도맡게 된 나. 어느 날, 나는 그만 친절하기로 합니다. 태생이 친절했던 사람에게 거절은 결코 쉽지 않아보입니다. 나는 거절하는 데에도 그만큼 에너지가 많이 든다는 걸 확인하게 되지요.


“아마 언니가 이 상황을 알게 되면 미안해할 거예요. 나는 언니를 이해하고, 언니를 이해하는 나 자신을 이해했어요.” (p.45)


   그런데 더이상 아이를 돌봐주지 못한다고 의사를 전한 바로 그 날 아이가 실종 됩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까지 보여왔던 선의가 전부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요. 그럼,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던 나는 뭐가 되는 건가요? 옆집언니는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까요? 진작에 내가 옆집언니와 스스로를 동시에 이해하려 했었다는 걸, 그만큼 내가 속이 깊다는 걸 그가 알아줄 수는 없는 걸까요? ‘You don’t know me’는 이미 거의 사이가 틀어져버린 듯한 이들이 부르는 듀엣곡입니다. 박정현과 이이언의 보컬이 서로 조화롭게 화음을 쌓아가지만, 의미심장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서로의 잘못을 탓하는 가사가 뒤섞여서 내내 서늘한 공기가 감도는 듯 하고요. ‘모두의 친절'을 읽는동안 달라붙는 물음표가 역시 인간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거라는 마침표로 바뀌는동안, ‘You don’t know me’가 적절한 배경음악이 되어줄 것입니다.




비타민 X 김세정 ‘오리발'


   그녀는 자신이 무난하게 살고 있는 신혼부부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남편인 진욱은 “적당한 게 좋은 거다"라는 말을 즐겨 하고, 이를 위해 그녀는 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는 합니다. 그건 진욱의 출근 시간에 매일 종합비타민을 챙겨주고, 자신도 빠짐없이 챙겨먹는 것이죠. 그러나 702호에 이사온 신혼부부의 집에 701호에 사는 민서 어머니가 드나들면서, 이들이 지켜내고자하는 무난한 적당함에는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민서 어머니가 남의 집의 비타민통을 개봉했다가 버젓이 뚜껑도 제대로 닫지 않고 나가는 걸 보면서, 비타민의 주인인 그녀의 머릿 속에는 어떤 결심이 서게 됩니다.


   김세정의 ‘오리발'은 “평온한 듯 보이는 나의 이 표정엔 너는 모르는 비밀이 있어"라고 시작됩니다. 그 비밀은 예상하셨겠지만, 노래 제목과 같은 ‘오리발'입니다. 그건 가장 평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구이자, 의도했든 아니든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부부가 매일 종합비타민을 복용하는 것도 남들이 알아줄만한 일이 아니지만, 그들만의 숨겨진 노력이자 어떤 안도감의 근원이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불청객 같은 민서 어머니가 비타민통을 발견하고 부시럭거리는 순간, 그녀가 가지고 있던 평범한 삶에 대한 이상은 깨져버렸을 겁니다. 만일 그녀가 이 노래를 듣는다면, 이전과는 달리 조금도 힘을 빼고 물 흐르듯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여전히 ‘적당한 노력'은 필요하겠지만요.




‘애완식물’ X 자우림 ‘있지'

   

   벌이 있거나, 그게 아니면 꿀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텅텅 비어 있는 벌집이 연일 도심 여러군데에서 발견되는 것이 ‘애완식물'이 그리고 있는 전염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베란다를 빼곡히 채울만큼 식물을 기르는 엄마는 습도가 높아지면 벌레가 꼬인다는 이유로 비를 싫어하지만, ‘아이’는 비가 오고난 후에는 모든 게 언제 그랬냐는 듯 다 마르니까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아이는 마치 벌집을 떠난 벌처럼 가출을 선택하는데요. 잠시 살게 된 어떤 남자의 집에서 가까운 화단을 쳐다보고는 합니다. 화단에는 역시 자신이 떠나온 곳 같은 빈 벌집이 있고요. 후덥지근한 여름볕에 점점 말라가던 벌집에 폭우가 쏟아지는데, 이 비가 그치면 소방관들이 순회를 돌며 화염방사기로 그걸 다 태워버리기로 예정되어 있어요.


   자우림의 ‘있지'의 가사에는 제목에 들어간 단어가 총 10회 등장합니다. 바람이 너무 좋아서 그냥 걸었다고 하다가, 그땐 잊어버리고 말하지 못 한 얘기가 있다고 하는 서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다른 말들 사이에 “있지”가 있는 걸 보면, 노래 속의 화자는 여러 날에 걸쳐 시차를 두고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아요. 일정시간 이어지는 대화처럼 들리지는 않습니다. 이 소설에서 ‘아이'와 ‘남자'는 서로의 목소리도 잘 모를만큼 직접적인 대화를 주고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있지, 벌집의 수학적 황금비율은 말이야" 하는 내용을 담은 문자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정도로 뜬금없는 사이입니다. 어쩌면 아이가 자신과 어긋나버린 듯한 엄마에게는 물어볼 수 없지만, 남자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말은 노랫 속의 이 가사가 아닐까요. “내일 비가 내린다면 / 우린 비를 맞으며 / 우린 그냥 비 맞으며"




『모두의 친절』

지은이 이나리
출판사 문학동네

「오른쪽」을 비롯해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쓰인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은 이처럼 도덕규범에 비추어 보았을 때 '바람직하지 않은' 인물을 제시하는데, 이들은 대개 여성일 때가 많다. 예민하고 거친 이 여성 인물들은 우리가 작품 속 인물에게 기대하는 바를 배반함으로써 그간 익숙하게 여겨져온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우리를 안내할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항상 올바르고 다정할 것을 요구받는 우리에게 어떤 해방감을 느끼게도 한다.



by ㅎㅇ



ㅎㅇ

뉴스레터 ㅎ_ㅇ의 발행인이자 케이팝 비둘기. 한 달에 한 권, 들불이 선정한 책과 k-pop을 연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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