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신청하기
시 읽기 모임 : 김유림 시인 편
- 진행 : 최가은
- 일정 : 7/29(금), 8/12(금), 8/26(금) 오후 8시
- 장소 : 온라인 진행(줌zoom)
- 최대 정원 : 8명
- 참가비 : 각 프로그램당 25,000원
길잡이 소개
최가은
문학평론가입니다. 여성과 언어의 관계를 탐구하며, 시를 공부합니다.
SNS
리뷰레터
발표한 글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 : 우리가 여성서사를 말할 때
문장 웹진 : 문보영 - 일기 (문보영론)
문장 웹진 : 과잉 남성 사회 (장류진론)
프로그램 소개
문장으로 쓰인 글이든, 허공에 내뱉어진 말이든, 언어는 결코 투명하고 선명하게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행여나 깜빡한대도 지겹도록 다시 가르침을 받는 사실 중의 사실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나면 언제나처럼 발을 굴리며 이런 말을 덧붙이죠.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고….” 그리고 놀랍게도 그 언어를 선택하고 사용한 바로 우리 자신에게도 같은 말을 던지곤 하는데요. “아니! 내가 할 말은 이런 뜻이 아닌데!”
해당 언어의 (임시) 주인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어떤 ‘진짜’ 의미를 둘러싸고 우리는 계속해서 언어로 무언가를 증명해내고, 언어로 그 증명의 실패를 목격하며, 그 결과로써 언어의 무능력만을 확인하게 됩니다.
요가 수도자의 문은 평범했다. 문은 도토리색이었다.
나는 기억 소환 기억술을 거부하며 문인 그대로 서 있었다.
도토리는 도토리에서 왔고 先山은 선산에서 왔다. 속살은 속살에서 오고 문은 문이다. 문은 도토리색이고 문의 손잡이는 둥글다. 질문 상자 앞에서 나는 문인 그대로 서 있었다.
문장 그대로 서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을 특별한 추억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나는 평범한 문이었다.
― 김유림, 「 비밀의 문」 중에서
그런데, 자신이 명징하다고 (그 순간) 믿고 쓰인 언어는 그것이 오해의 방식으로라도 아예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을까요? 이미 ‘문장’이 되어 등장해버린 이상, 그 문장은 어떤 식으로든 의미 발생의 트랙에서 비껴설 수 있는 걸까요?
그러니까 과연 김유림의 제안대로, 어떤 문장을 “문장 그대로 서 있었다”인 채로, 우리는 가만히 내버려둘 수 있는 것일까요? 그러려면 “문장 그대로” 우뚝 서 있는 어떤 문장에 대하여, 우리는 특정한 “기억 소환 기억술을 거부”해야 할 텐데, ‘기억술’을 거부하지 못한다면 곧바로 해당 문장에는 기억과 관련된 의미 발생이, 즉 문장에 대한 오해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죠. ‘기억술’을, 나아가 오독을 거부하는 우리는 이 문장을 그렇다면 대체 무엇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문장의 생김새로? 배치로? 어떤 “이미지나 느낌”(「그 카페로 다시」)으로?
그렇다면..그런 ‘다른’ 받아들임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기억술’을 거부하는 데 실패한 “특별한 추억”이 있을 수 있나요? “지금 이 순간을 특별한 추억으로 만들고자 했다”는 그 문장 그대로 우두커니 서 있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죠. 그러나 ‘특별한’은 그것에 실패해야만(“그러나”), ‘평범한’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러려면 우리는 ‘특별한’과 ‘평범한’을 가르는 어떤 기억술을 또 한 번 거부해야 하고 거부를 하려면 어떤 기억술이 일단 소환되어야만 하는데…. 그 결과의 의미는 그러니까…. 아니, 시작이 뭐였더라….
김유림이 우리의 손을 잡고 안내하는 여러 골목들은 그 자체로 각 문장, 단어, 한 편의 시가 지닌 의미에 관한 “양방향”을, 때로는 “양방향”을 넘어서는 “세 개 이상의 모형”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김유림의 시집들에 대해서라면 언어의 ‘정확한’ 서술에 골몰하는 시라거나, 말로 쌓는 ‘미로’의 세계라는, 언뜻 보기에 정반대인 감상들이 천연덕스러울만큼 나란히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에게 양방향 중 어느 것을 제 방향으로 삼자고 제안하기보다, 그 양방향이 겹치는 곳에서 비로소 탄생하는 김유림만의 “별세계”를 읽어보자고 제안합니다. 이를테면 김유림 특유의 주저하고, 한 발짝 물러서는 문장들은 그것의 ‘정확함’의 근거가 되면서, 동시에 ‘미로’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해해보자고요.
함께 읽을 책
『세 개 이상의 모형』
『양방향』
『별세계』
* 도서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개별적으로 준비해주세요.
프로그램 구성
강의 및 참여자 토론으로 진행됩니다.
『세 개 이상의 모형』 마감되었습니다!
7/29(금) 오후 8시온라인 진행(줌)길잡이의 강의(15~20분)와 인상 깊었던 낭독 및 토론(90~100분)을 진행합니다.토론시 길잡이가 준비한 질문을 토대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양방향』 마감되었습니다!
8/12(금) 오후 8시온라인 진행(줌)길잡이의 강의(15~20분)와 인상 깊었던 낭독 및 토론(90~100분)을 진행합니다.토론시 길잡이가 준비한 질문을 토대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별세계』 마감되었습니다!
8/26(금) 오후 8시온라인 진행(줌)길잡이의 강의(15~20분)와 인상 깊었던 낭독 및 토론(90~100분)을 진행합니다.토론시 길잡이가 준비한 질문을 토대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프로그램 진행 방식
- 모임 진행 전, 각자 회차별 도서를 읽어옵니다.
- 모임 길잡이 가은 님의 강의를 듣습니다. (15~20분)
- 모임 길잡이 가은 님이 준비하신 질문들의 내용을 토대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90~100분)
- 회차별 참여 링크는 모임 당일 오전 중 공유드립니다.
환불 규정
- 프로그램 시작일 2일 전까지 전액 환불 가능합니다.
- 프로그램 시작일 1일 전에는 90% 환불이 가능하며, 프로그램 당일부터는 환불이 어렵습니다. 이 점 참고하시어 신중하게 신청해주세요.
기타 안내사항
- 프로그램 접근이 어려운 분께서는 메일 또는 카카오채널로 문의주시면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본 프로그램은 여성만 참여가능한 여성 전용 프로그램입니다.
- 들불의 모든 프로그램은 도서를 완독하지 않아도 참여가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읽기자료들을 모두 읽고 참여하실 경우프로그램 내용이 한층 더 풍성해지며, 본인과 참여자 모두에게 더욱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어요. 프로그램에 필요한 읽기 자료는 가급적 읽고 참석해주시길 권장드립니다.
- 문의 : contact@fieldfire.kr 또는 들불 카카오채널(카카오톡에서 '들불' 검색)
프로그램 신청하기
프로그램 신청하기
시 읽기 모임 : 김유림 시인 편
길잡이 소개
최가은
문학평론가입니다. 여성과 언어의 관계를 탐구하며, 시를 공부합니다.
SNS
리뷰레터
발표한 글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 : 우리가 여성서사를 말할 때
문장 웹진 : 문보영 - 일기 (문보영론)
문장 웹진 : 과잉 남성 사회 (장류진론)
프로그램 소개
문장으로 쓰인 글이든, 허공에 내뱉어진 말이든, 언어는 결코 투명하고 선명하게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행여나 깜빡한대도 지겹도록 다시 가르침을 받는 사실 중의 사실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나면 언제나처럼 발을 굴리며 이런 말을 덧붙이죠.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고….” 그리고 놀랍게도 그 언어를 선택하고 사용한 바로 우리 자신에게도 같은 말을 던지곤 하는데요. “아니! 내가 할 말은 이런 뜻이 아닌데!”
해당 언어의 (임시) 주인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어떤 ‘진짜’ 의미를 둘러싸고 우리는 계속해서 언어로 무언가를 증명해내고, 언어로 그 증명의 실패를 목격하며, 그 결과로써 언어의 무능력만을 확인하게 됩니다.
요가 수도자의 문은 평범했다. 문은 도토리색이었다.
나는 기억 소환 기억술을 거부하며 문인 그대로 서 있었다.
도토리는 도토리에서 왔고 先山은 선산에서 왔다. 속살은 속살에서 오고 문은 문이다. 문은 도토리색이고 문의 손잡이는 둥글다. 질문 상자 앞에서 나는 문인 그대로 서 있었다.
문장 그대로 서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을 특별한 추억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나는 평범한 문이었다.
― 김유림, 「 비밀의 문」 중에서
그런데, 자신이 명징하다고 (그 순간) 믿고 쓰인 언어는 그것이 오해의 방식으로라도 아예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을까요? 이미 ‘문장’이 되어 등장해버린 이상, 그 문장은 어떤 식으로든 의미 발생의 트랙에서 비껴설 수 있는 걸까요?
그러니까 과연 김유림의 제안대로, 어떤 문장을 “문장 그대로 서 있었다”인 채로, 우리는 가만히 내버려둘 수 있는 것일까요? 그러려면 “문장 그대로” 우뚝 서 있는 어떤 문장에 대하여, 우리는 특정한 “기억 소환 기억술을 거부”해야 할 텐데, ‘기억술’을 거부하지 못한다면 곧바로 해당 문장에는 기억과 관련된 의미 발생이, 즉 문장에 대한 오해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죠. ‘기억술’을, 나아가 오독을 거부하는 우리는 이 문장을 그렇다면 대체 무엇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문장의 생김새로? 배치로? 어떤 “이미지나 느낌”(「그 카페로 다시」)으로?
그렇다면..그런 ‘다른’ 받아들임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기억술’을 거부하는 데 실패한 “특별한 추억”이 있을 수 있나요? “지금 이 순간을 특별한 추억으로 만들고자 했다”는 그 문장 그대로 우두커니 서 있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죠. 그러나 ‘특별한’은 그것에 실패해야만(“그러나”), ‘평범한’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러려면 우리는 ‘특별한’과 ‘평범한’을 가르는 어떤 기억술을 또 한 번 거부해야 하고 거부를 하려면 어떤 기억술이 일단 소환되어야만 하는데…. 그 결과의 의미는 그러니까…. 아니, 시작이 뭐였더라….
김유림이 우리의 손을 잡고 안내하는 여러 골목들은 그 자체로 각 문장, 단어, 한 편의 시가 지닌 의미에 관한 “양방향”을, 때로는 “양방향”을 넘어서는 “세 개 이상의 모형”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김유림의 시집들에 대해서라면 언어의 ‘정확한’ 서술에 골몰하는 시라거나, 말로 쌓는 ‘미로’의 세계라는, 언뜻 보기에 정반대인 감상들이 천연덕스러울만큼 나란히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에게 양방향 중 어느 것을 제 방향으로 삼자고 제안하기보다, 그 양방향이 겹치는 곳에서 비로소 탄생하는 김유림만의 “별세계”를 읽어보자고 제안합니다. 이를테면 김유림 특유의 주저하고, 한 발짝 물러서는 문장들은 그것의 ‘정확함’의 근거가 되면서, 동시에 ‘미로’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해해보자고요.
함께 읽을 책
『세 개 이상의 모형』
『양방향』
『별세계』
* 도서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개별적으로 준비해주세요.
프로그램 구성
강의 및 참여자 토론으로 진행됩니다.
『세 개 이상의 모형』마감되었습니다!7/29(금) 오후 8시온라인 진행(줌)길잡이의 강의(15~20분)와 인상 깊었던 낭독 및 토론(90~100분)을 진행합니다.토론시 길잡이가 준비한 질문을 토대로 이야기를 나눕니다.『양방향』마감되었습니다!8/12(금) 오후 8시온라인 진행(줌)길잡이의 강의(15~20분)와 인상 깊었던 낭독 및 토론(90~100분)을 진행합니다.토론시 길잡이가 준비한 질문을 토대로 이야기를 나눕니다.『별세계』마감되었습니다!8/26(금) 오후 8시온라인 진행(줌)길잡이의 강의(15~20분)와 인상 깊었던 낭독 및 토론(90~100분)을 진행합니다.토론시 길잡이가 준비한 질문을 토대로 이야기를 나눕니다.프로그램 진행 방식
환불 규정
기타 안내사항
프로그램 신청하기